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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 개론-지오다노 브루노

by 여행하는_캠퍼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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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오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중세 철학자 동상 사진

중세의 폐쇄적 세계관을 박차고 현대로의 길을 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있어서 보다 참된 세계관의 수립을 위하여 순교한 지오다노 브루노는 1548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16세 때에 수도원에 들어가 스콜라 철학과 고대 및 아라비아의 철학을 공부하는 한편, 그 당시의 휴머니스트 들과 자연철학자들 특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알게 되어 큰 감명을 받았다. 그 후 1010여 년이 지나서 그는 가톨릭교회의 정통교리인 화체설(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과 동정녀수태의 교리에 반대함으로써 1576년에 법의를 버리고 얼마 후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스위스·프랑스·독일·영국을 전전하는 방랑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가르치며 많은 저술을 하였다. 그러던 중 어떤 청년 귀족의 꾐으로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으나, 그 청년의 밀고로 종교재판소에 의하여 체포되어 로마로 이송되었다. 그후 7년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파문당하고, 1600217일 배교이단 및 수도사의 서약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하였다. 처형되기 8일 전, 그의 주장을 철회하면 죽음을 면하게 해 준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는 이를 물리 치고 꿋꿋이 죽음에 나아갔다.

그가 죽은 것은 무슨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다만 자연과 세계에 대하여 진리라고 생각한 것을 끝내 주장한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브루노의 사상이 더 옳지만, 그 당시 권세를 잡고 있던 종교재판소는 그 사상을 위험한 것으로 보고 탄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권위에 의거하는 가톨릭교회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가끔 범신론적 경향에도 정통사상에 있어서 자연은 그저 피조물이었다. 신을 자연과 동일시하는 연관은 스콜라 철학의 시대로부터 내려온, 그리고 16세기와 17세기 초의 나아갔으나, 이러한 경향은 자칫 잘못하면 이단시되었다. 르네상스의자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기저에 있으면서 조금도 의심을 받지 않았던 중세 적 세계관, 즉 신을 자연으로부터 아주 분리시키고 자연은 피조물로서 신으로부터 무한히 낮고 천한 데 있다고 보는 세계관에 대립하여 이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르네상스는 자연을 <창조되는 자연>(natura naturala)<창조하는 자연>(natura naturans)으로 나누고 자연 속에 생명의 힘이 있고 창조와 생성의 원리가 있다는 사상에로 나아갔다. 자연은 한갓 피조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요, 자연 속에는 신의 작용하는 힘이 넘쳐 있기 때문에, 자연은 신의 본원적 실재에 참여한다. 자연은 자기 속에 자기 형성과 자기 발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연은 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가장 아름답고 알뜰하게 표현한 사람이 브루노였다. 그는 말하였다 "자연은 사물들 속에 심어진 힘이요, 모든 물상 이 자기 고유의 길을 걸어갈 때에 따르는 법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브루노에게 있어 "신은 주위를 돌면서 모든 것을 인도하는 예지가 아니다. 신의 품속에 사는 모든 것이 제각기 운동한다고 생각하느니 보다는 오히려 신이 운동의 내적 원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신에 대하여 합당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신 자신의 본능이요, 모습이 요혼이다." 이리하여 신은 자연생성의 내재적 원리로 생각되며, 자연은 신에까지 높여지고 신의 무한성 속에 녹아들어 간다.. 이러한 범신론은 이윽고 스피노자에게서 그 뚜렷한 반향을 보게 된다.

 

브루노는 우주 안에 무수한 세계가 있어 생성소멸한다는 우주무한론을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교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 오던 우주유한론에 반대하였다. 우주에는 절대적 중심이 없으며, 따라서 우주의 모든 부분에 있다. 평등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치상의 차별이 없다. 만물 속에 나타나 생성케 하는 신은 가장 미소한 것들 속에도 생명으로서 들어 무한한 우주를 발견하고 마치 발 디딜 곳이 없이 허공에 뜬 것과도 같이 불안해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세계가 무한하다고 하는 생각은 브루노였다. 그에게 있어 무한은 우주의 무한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한 하나의 저주인 듯싶었으나, 이것을 하나의 축복이게끔 한 것이 바로 인간정신의 무한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은 이제 이 춥다란 세계의 장벽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이 무한한 우주의 지배자가 될 것을 바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주의 무한성이 의식되는 동시에, 또한 인간정신의 무한한 능력이 자각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도처에서 공격을 받고 있던 그 당시, 우주 이 모든 것은 바로 근대적 세계관에로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한하여 헤아릴 수 없다고 하는 주장, 세계가 하나만이 아니고 무수하다고 하는 학설은 드디어 하나의 범죄로 여겨지게 되었다. 

 

브루노는 당시의 그리스도교적 내세관을 위선이라 보고, 궁극의 선이 한 우주적 생명과의 합일이라고 말하면서 현세에 있어서의 봉사를 강조 하였다. 그리고 신의 불에 몸을 태우는 것이 다름 아닌 구원이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이리하여 르네상스의 열정적 사상가 브루노는 몸매와 횡포 가 행세하는 세상에서 자유와 진리가 보장되는 미래의 세계를 준비하면서 결연히 신의 불에 몸을 태워 죽었다.

 

출처: 철학개론(최명관, 곽신환 지음)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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