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콜라(Schola) 철학의 성립과 일반적 성격
중세 스콜라 철학의 기원은 칼 대제가 그 지배하에 있는 나라의 지적 도덕적 상태의 개선을 위하여 행한 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8세기에는 많은 이교적 요소가 습속 속에 남아 있어서, 깊은 무지의 상태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칼 대제는 스콜라, 즉 학원을 세우고 문학을 연구케 하였다. 이 교육사업을 조직함에 있어, 교양 있는 교사들을 프랑크인 속에서나 혹은 자기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사방으로부터, 특히 이탈리아와 영국으로부터 지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을 초빙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협조자가 되어, 투르(Tours), 리용(Lyon), 오를리앙(Orléans) 및 이 밖의 여러 곳에 학원을 설립하였다. 이 학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을 스콜라스틱, 즉 <학원교수>라 불렀다.
카톨링 왕조의 르네상스는 처음부터 그 주된 노력이 철학을 향했던 은 아니다. 칼 대제의 협력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인 알퀴누스(730 ~804경)의 여러 저작은 그 당시의 교육내용에 대하여 매우 정확한 지식을 우리에게 준다. 알퀴누스는 이미 알려져 있던 일곱 가지 인문학과의 분류를 학원에 받아들여 보급시켰다. 이 학과들의 교육은 모든 연구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다. 일곱 개의 인문학과는 다시 두 그룹으로 즉문 법·수사·변증(논리학)의 3학과(trivium)와 산술기하·천문·음악(여기에 의학이 더해진다)의 4학과(quadrivium)로 나뉜다. 철학은 변중학에서 분리되어 이미 독립하였고, 인문학과 위에 있어 이 모두를 지배하였으며, 신학은 다시 이 철학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은 중세정신의 핵심적 산물이었다. 중세 최고의 지성들이 스콜라 철학 한 가지로 이를 시작하고 대성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 필연성을 따라,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그리스철학에 의하여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이 사업은 2세기에 시작되었으나 중세에 이르러 그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후세에 스콜라 철학으로 알려지는 체계를 이룩하였다. 중세에는 처음 부터 헬레니즘이 침투하고 있었다. 20세기에 있어서 중세철학 연구에 귀 중한 공헌을 한 에티엔 질송(Etienne Gilson)은 중세철학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중세는 처음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몇 가지 저작과 플라톤의 중요한 단편들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리 자체에도 그리고 또 교부들이 이에 가한 놀랄 만큼 풍부한 주석에도 그리스 사상의 인각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스철학은 도그마처럼 초자연적인 권위에 호소하지 않고, 오직 그 설명 능력만을 가지고서, 중세사상가들 이 그들에게 제시된 실재를 정의하는 데 본질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실재에 대한 이토록 다른 두 전망 사이에는 독창적인 풍요한 결 합이 부단히 가능하게 되고, 양자의 공연한 대립과 투쟁도 부단히 가능하게 된다."
이 스콜라 철학에 대하여 근세 이래로 극단적으로 상반하는 태도가 대립하여 왔다. 현대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태도를 보게 된다. 미국의 사회학 자소로킨(Sorokin)은 13세기 인류문화의 하나의 절정기로 본다. 오늘날과 같은 음란과 부패가 없었다. 현 대사회의 활로는 적어도 13세기의 인간생활을 될 수 있는 대로 회복하는 데에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극단에 이르러 배타적으로 되는 경우, 중세 이후의 모든 철학적 발전을 소홀히 하는 폐단이 없지 않다.
한편, 중세 말기의 교회의 부패에 대하여 항거한 새로운 인간지성의 각성은 스콜라 철학을 시시한 것, 쓸데없는 일에 열중하는 진부한 철학으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능한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Erasmus)는 비난하기를, 스콜라 철학자들은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앉을 수 있는가를 토론하는 일로 소일한 자들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근대의 여러 철학사가에 의하여 스콜라 철학은 곧 번쇄철학이라 규정되기도 했다. 대체로 근대철학 사가들에 의하면, 스콜라 철학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철학이 아니라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다. 즉, 독자적인 입장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이 아니다. 스콜라 철학의 논리인 삼단논법 내지 연역법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사고방식이요, 그것은 결국 종교적 몽매주의에로 우리를 인도할 따름이다. 이러한 몽매로부터 베이컨(Bacon), 데카르트(Descartes)가 우리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스콜라 철학의 본성 속에는 과학이 발달할 수 없는 이유가 깃들여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태도에 대하여 길송은 중세철학을 사실 있는 그대로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했다고 하겠다. 현대세계의 특징이 그 세계관의 난립에 있다고 한다면, 중세세계는 그 생활태도와 세계관의 통일에서 그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탁월한 사가였던 크레인 브린틴(Crane Brinton)이 말한 바와 같이, "중세는 한 마디로 하느님의 세계였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중세철학은 근본적으로 신앙에 입각하면서도 느 리고 꾸준한 발전이 없지 않았고, 또한 사상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논쟁과 차이가 없지 않았다. 길송은 말한다 "중세의 철학체계를 하나의 분류 의 틀 속에 집어넣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는 근래의 연구에 나타난 주요 경향에 합치한다. 중세철학이 한결같다 혹은 다양성이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저 그것을 멀리서 한 가지 입장에서 밖에는 고찰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만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되어, 오히려 반대로 그것을 가까이서 각 사상가의 고유한 입장에서 고찰하는 사람에게는 극히 다양한 것으로 보이게끔 되었다. 또한 9세기에서 14세기에 걸친 철학적 사변은 내적 필연성에 지배되어 정상적으로 진화하였으며, 스스로의 기원을 하나의 혁명에 의한 것으로 자부하고 또 중세철학과의 대립에 의하여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근대철학이 사실은 많은 점에서 중세철학의 당연한 결론, 단순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다.“
출처: 철학개론(최명관, 곽신환 지음)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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