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로스켈리누스

by 여행하는_캠퍼 2023. 3. 5.
반응형

 - 로스켈리누스

르네상스 철학

스콜라 철학이 진척되는 동안에 어떤 기본적 질문이 커다란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즉 개념적 보편성이 참인가, 아니면 감각적 개별성이 참인가 하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궁극적으로 영혼이 인간의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기준 내지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 무척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는 철학에 몰두했던 중세의 수도사들이 기독교 신학자에게서 이에 대한 모티프를 발견하여 질문을 제기한 게 아니라, 이교도의 책에서 수용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무척 귀한 문헌에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신 플라톤주의자인 포르피리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원문과는 약간 달리 작성하여 <다섯 단어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썼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곳에서 강의한 바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은 5세기에 보에티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개체는 과연 그 자체 내부적으로 실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다만 지 적인 영역 속에 그냥 주어져 있는가?> 여러 종들과 개체들이 그 자체 내부적으로 실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은 그것들이 현실적 실체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물음과 동일합니다. 이러한 질문 속에는 어떤 보편성에 관한 토론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중세 전 시기에 걸쳐 제기되었으며, 개념의 실체를 용인하는 사람 그리고 개념의 실체를 언어로 파악하는 사람 사이의 사상적인 전선을 형성하게 하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의 사고 속에 의식되는 사물이 실제 현실의 그것과 일치한 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해서 후자는 인간의 사고 속에 떠오르는 사물을, 말하자면 유일하게 실존하는 실제 무엇에 대한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이해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콜라 철학의 초기에 세 가지 서로 다른 중요한 입장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것들은 로스켈리누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그리고 아벨라르 두스에 의해 나타난 것들입니다.

 

일단 로스켈리누스의 입장부터 개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극단적 유명론을 제시한 최초의 사람이 바로 로스켈리누스였습니다. 그의 유명론은 오로지 감각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로스켈리누스에 의하면 세계에는 오로지 개별적인 것만 존재하고 보편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편적 개념들은 <소리의 바람> 다시 말해서 오로지 혀에 의해서 생산된 공기의 움직임에 불과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발언 속에는 갈레노스에 의해 전해진 어떤 유형의 의학적 견해를 모독하려는 저의가 담겨 있습니다. <바람>이란 원래 식사 후의 <트림>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트림하는 소리가 바로 보편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대하려는 자는 무엇보다도 감각적 직관을 통해서 사물의 다양한 특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주어진 현실을 감각적으로 직관하면, 우리는 보편성을 추출할 수 있는 공통적 특성이라든가 상호 연관된 무엇이 궁극적으로 가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호 관련성을 지니는 무엇은 주어진 현상 내지는 이름에 토대를 두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주어진 어떠한 것들 실에서 인지되지 않고, 오로지 어떤 상호 관련되는 공통적 특성을 지니는 <명칭> (이른바 보편성을 가리키는) 상호 관련되는 무엇과 일치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로스켈리누스는 이러한 결론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사고해 나갑니다. 그는 어떤 전체의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너무 일반적이라고 규정합니다. 가령 어느 집(전체)에 달려 있는 지붕이라든가, , 혹은 창문(부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개별적 사물들 역시 인식론적 의미에서 고찰할 때 여전히 관념적으로 머물고 있으며, 현실에 첨가된 무엇에 불과할 뿐입니다. 집에 포함된 지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벽이나 창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스켈리누스에 의하면 보편적인 무엇의 가치 하락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물들은 감각적으로 인지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물들은 비현실적인 사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찰하는 감각주의자 로스켈리누스는 <중세 초기의 마흐>라고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로스켈리누스는 에른스트 마흐처럼 물리적 소재를 다루지 않았으며, 어떤 특정한 사회적 사명 또한 지니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로스켈리누스에게도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어떤 사명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가 추론해 낼 만큼 쉽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로스켈리누스에게 보편적 존재는 오로지 언어로써만 표기될 수 있습니다. 오로지 단어만이 무언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구분>이라는 단어 자체도 너무 일반적이며,, 개체라는 단어 역시 여전히 추상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스콜라 철학의 초기에 어떤 극단적인 유명론이 로스켈리누스에 의해서 명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로스켈리누스의 입장은 사회적으로 반동적인, 혹은 진보적인 임무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비하면 나중에 나타난 유명론은 초기의 시민운동에 자극을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운동은 서부 유럽과 중부 유럽에 정착된 농업 경제에 바탕을 둔 봉건주의에 대항했습니다. 가령 둔스스코투스 그리고 윌리엄 오컴 등의 유명론을 생각해 보십시오. 설령 로스켈리누스의 입장이 이와 같은 사회적 임무를 지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기독교 신앙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했습니다. 만약 그가 현실에 대한 보편적인 상상을 용인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영혼, 신 그리고 삼위일체 또한 단순한 명칭에 불과하고, 그저 바람을 일게 하는 비가시적 존재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테니까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단 하나의 이유에서 신학자들은 로스켈리누스의 근본적 입장을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출처: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