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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파라켈수스

by 여행하는_캠퍼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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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켈수스

르네상스 조각상 사진

이제 우리는 독일로 향해 가봅시다. 그곳에는 언제나 비가 내려서 주위는 축축하고 안개가 자욱하며 구름이 언제나 하늘을 가립니다. 거대한 숲들이 자리를 차지하여 높이 솟구쳐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봉건주의의 흔적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습니다. 독일 지역은 이탈리아와는 전혀 다른 자연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변화 불측한 변덕스러운 기후가 바로 그것입니다. 독일의 달빛, 기나긴 저녁 시간, 집 그리고 어두운 정취를 생각해 보세요. 바그너는 부활절 산책을 마친 뒤에 파우스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도 어서 가세!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암울해졌어.. 공기는 서늘하지만, 안개가 짙게 깔렸어! 저녁 시간이면 사람들은 마냥 집을 그리워하지!> 따뜻하고 천정 높은 고딕 건물의 방, 야콥 뵈메가 수선공으로 일하던 구둣방을 생각해 보세요. 그곳은 사변적인 내향성을 위한 하나의 하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바깥은 몹시 춥지만, 방 안은 독일 사람들에게 내적인 열기 그리고 깊은 사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비록 나쁜 날씨가 그들을 집 안으로 몰아갔지만, 독일인들로 하여금 내면적 열정을 지니게 하고 깊이 사고하게 했습니다. 적어도 16세기까지는 그러했습니다.

 

독일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낙후했던 나라였습니다. 중세의 분위기가 독일에서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딕 건물과 같은 중세의 특성이 독일의 삶과 예술의 영역을 지배할 정도였습니다. 독일 농촌의 분위기, 암울한 기후 그리고 낙후한 경제적 상황 등은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 비교할 때 어떤 비동시적 특성을 보여 줍니다. 다른 나라에서 시야의 폭을 넓혀 나가던 르네상스 양식이 채택되고 있었지만, 독일에서는 모서리와 각을 중시하는 수직적 고딕 양식이 채택되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비동시적인 특수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상의 나라, 독일을 이해하려면 여러분들은 주위의 나라인 이탈리아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 기후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기에 살았던 독일 학자로서 우리는 두 사람을 거명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호엔하임 출신의 파라켈수스이며, 다른 한 사람은 야콥 뵈메입니다. 전자는 의사로 살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녔던 철학자이며, 후자는 구두 수선공으로 먹고살던 철학자였습니다. 야콥 뵈메는 누구보다도 깊이 사고하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제 수련 기간 동안에 행한 청춘의 방랑을 제외한다면, 고향 괴를리츠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독일의 철학자>였습니다. 파라켈수스는 1493년 스위스 근처의 아인지델른에서 태어났으며, 1541년 잘츠부르크에서 죽었을 때 오랜 방랑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의사로, 엉터리 약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때로는 경험론에 근거한 놀라운 사고를 개진했으며, 때로는 사변적 내용을 담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스위스의 바젤이었습니다.

 

파라켈수스는 인민들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인민의 지식에 관해서 어떤 거대한 경외감을 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마부들에게 무언가를 듣고, 오래전에 가정에서 사용했던 도구들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가령 헉헉거리는 말을 진정시키는 마부들의 방법이나, 나이든 여자 그리고 약초 캐는 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단순한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경험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컨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얻은 여러 약초들의 효험에 관해서 많은 것을 파라켈수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금속의 작용에 관해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금속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몹시 궁금했던 것입니다. 파라켈수스는 이 모든 사항을 수용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오래된 인민의 지식을 무조건 르네상스의 지식으로 도입한다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의학적 지식에 국한되지 않았고, 인민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 역시 함부로 언급될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대립과 관련되는 숲. 지구의 내부, 지구의 내부에서 자라고 있다는 금속 나무, 비밀스럽게 흐르는 지하수 등의 이야기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파라켈수스는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할 때는 세심한 경험주의자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철학의 역사뿐 아니라, 의학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어쩌면 철학사보다도 의학사를 강의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학자인지 모릅니다.

 

파라켈수스의 이론의 출발점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습니다. , 내부와 외부가 끊임없이 서로 유기적인 관련성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내부>라는 단어를 브루노 그리고 캄파넬라의 시대 전체를 통틀어 핵심 사항으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철학자이자 의사인 파라켈수스가 세계 그리고 현세에 대한 이탈리아 방식의 아름다운 시각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현세의 내적목 거울 부분을 예의 주시하면서 집요하게 그 내부를 파고들어 라켈수스는 외부에 관한 내부적 특성, 그리고 내부에 관한 외부 강한 적이 없었습니다. 파라켈수스의 눈에는 내부에 있는 것 외부에 있는 것 또한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비쳤습니다.

 

출처: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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